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알면서도 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지금 이 순간 그에게 허락된 가장 솔직한 위안이었으므로.
서울의 오후 네 시. 빛이 기울어지는 각도가 언제부터인가 그를 감상적으로 만들었다. 직각으로 꽂히는 한낮의 햇살은 사람을 깨어 있게 만들지만, 이렇게 비스듬히 누운 빛은 다르다. 창유리를 비스듬히 통과해 먼지들을 금빛으로 띄워 올리는 이 각도의 빛은, 마치 오래된 필름 영사기처럼 기억의 벽면 위에 지난 장면들을 조용히 쏘아 올린다.
그는 손을 뻗어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물건을 골동품이라 부른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소리까지 불러낼 수 있는 시대에, 주파수를 찾아 손가락으로 더듬어야 하는 이 기계는 어딘가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세계와 내가 연결되는 방식이 아직 아날로그였던 시절의, 살아남은 증인이었다.
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멜로디가 번져 나왔다.
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Karen Carpenter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 이상하게도 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애잔한 모습을 연상케하듯 슬펐다. 완벽하게 통제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새어나오는, 그런 목소리. 그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그는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이 학년이었다.
방과 후 골목을 뛰어 집으로 돌아오면,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신발을 벗기도 전에 라디오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었다. 엄마는 늘 부엌에 있었다. 저녁 냄새가 집 안을 돌아다니고 — 된장찌개인지 계란말이인지, 그 냄새의 조합만으로도 그날 하루가 어떤 하루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 그 냄새 위로 라디오 소리가 포개지면, 그제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그 시절 그가 가진 가장 순수한 형태의 욕망이었다. 지금처럼 원하는 노래를 즉각 불러낼 수 없었으므로, 기다림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었다. 혹시라도 흘러나올까 싶어 다이얼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귀를 기울이는 그 시간들 —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욕망을 욕망으로 온전히 간직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래 빛난다는 것을.
Every sha-la-la-la, every wo-wo-wo still shines…
후렴구가 시작되자 그의 손가락이 자기도 모르게 무릎 위에서 박자를 두드렸다. 근육이 기억하고 있었다. 뇌보다 먼저, 몸이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여름방학의 어느 오후.
할머니 집 마당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삼촌이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져왔고, 테이프를 넣자 흘러나온 것이 바로 이 노래였다. 사촌들이 웃으며 뛰어다녔고, 그는 맨발로 흙 위를 달리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곤했다. 피가 조금 났지만 울지 않았다.
할머니는 縁 마루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그 광경을 바라보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입가에 번진 그 미소는 — 그것은 언어가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확인 같은 것. 자식들이 웃고 뛰노는 것을 보는 노인의 눈 속에만 존재하는 종류의 평화.
그 감나무는 지금 없다. 할머니도, 그 마당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남아 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딩들이 석양을 등지고 검은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도시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만 허락한다. 그 너머 어딘가에, 골목이 있었을 것이다. 공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저녁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지나간 연인이 떠올랐다. 첫 데이트, 어설프게 잡았던 손, 그날 상점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이 멜로디. 나중에 헤어지고 한참 뒤, 카페에서 우연히 이 노래가 나왔을 때 그는 커피 잔을 들다 말고 한동안 멈추어 있었다. 노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여전히 밝게 흘렀고, 그 밝음이 오히려 아팠다.
음악의 잔인함은 거기에 있다. 감정이 바뀌어도 멜로디는 변하지 않는다. 기쁠 때 들었던 노래가 슬픔의 한가운데서 들려올 때, 두 감정이 한 음표 안에서 충돌한다. 그 충돌이 바로 추억이다.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그는 미소 지었다. 슬픔과 따뜻함이 정확히 반씩 섞인 미소였다.
시간이란 이상한 것이다. 우리는 늘 앞으로 간다고 믿지만, 어쩌면 우리가 가는 곳은 끊임없이 과거가 덧쌓이는 곳일지도 모른다. 걸음마다 발밑에 지층처럼 쌓이는 그 기억들 위를 우리는 걷는다. 그러므로 추억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디딘 땅 아래에 있다.
Karen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라디오 너머 DJ가 말했다. "좋은 추억이 떠오르시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혼자 우두커니.
라디오를 끄지 않은 채 그는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저녁이 도시 위로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불빛들이 하나씩 켜졌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도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만의 마당을, 자신만의 골목을, 자신만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었다.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위로만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증명이다. 네가 살았다는 것의, 무언가를 사랑했다는 것의, 그 사랑이 지금도 네 안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의.
Sha-la-la-la. 그 소리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필름이 닳아도, 마당이 사라져도, 손이 식어도.
그립고 아쉬움으로 가득찬 젊은 날의 기억들이 지금 내 앞에서 조용히 사라져간다.
“Music is the shorthand of emotion.” – Leo Tolstoy
그 한 마디가, 오늘도 그의 가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어제는 다시 한 번, 오늘의 일부가 되어간다.


